고증 없는 고종 장례식과 3.1운동 기념
서울시는 26일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 중 고종 국장(國葬) 재현행사 논란과 관련, "고종의 국장이 있어서 만세운동이 가능했다"고 반박했다. 서해성 서울시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총감독은 이날 오전 시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종의 죽음이 있었고 그때 거대한 장례식이 있었기 때문에 3·1운동을 위한 합법적 공간이 확보됐다"고 말했다.
서 총감독은 "그날 추모객이 많이 왔다. 추모객들이 남대문역을 통해 고향으로 돌아가는 중이었고 그런 상황에서 만세운동이 가능했다"며 "왜 그들이 덕수궁으로 시위대가 진출했을까.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국상이라는 분위기가 없었다면 절대로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추모를 항쟁으로 바꿔놓은 것이라 생각한다. 그 당시 추모는 '왕에 대한 직접적인 추모도 있었지만, 국권 소멸에 대한 불인정'의 의미도 담겨 있었다. 항쟁적 요소를 동시에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고종 국장 재현행사 '100년만의 국장'을 덕수궁 인근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에 역사학계를 중심으로 '조선의 독립 의지를 보여주지 못한 나약함의 상징이자 국권 침탈의 원인 제공자인 고종을 기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등 비판이 제기됐다.
고종께서는 1919년 1월 21일 아침 6시경 덕수궁 함녕전에서 68세로 승하하셨다. 장례는 1919년 2월 9일 장례가 이루어졌다.
고종의 장례식장은 훈련원
덕수궁주변에 쳐진 하얀천 - 국장을 하얀천으로 예술적으로 재현했다고..
이번 서울시의 고종 국장(國葬) 재현행사 논란과 관련해서 역사적 고증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사학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고종의 국장이 정확하게 어디서 행해졌는지에 대한 언급대신 고종의 국장을 퍼포먼스로 만들었다. 실제로 고종의 장례 행사는 국권을 잃은 후라서 이왕직에서 거행했고, 장례식은 훈련원에서 일본식, 일본인들의 말대로는 근대식으로 진행했다. 장례식장인 훈련원에서 금곡 홍릉까지는 방상씨, 죽안마가 등장한 조선식이 가미되었다. 이때 조선의 백성들이 마지막 황제를 눈물로 배웅했다.
그런데, 덕수궁 돌담길에 고종의 장례식을 재현한 행사를 거행한단다. 그렇게 일제가 우짜고 저짜고를 감정적으로 자극하면서. 막상 실질적 역사에서는 덕수궁에서 훈련원까지는 일본군대가 동선을 제한한 일본식으로 거행했는데 과연 이런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고종의 장례식이 3.1 운동의 발단이라기보다는 분위기나 여건을 만드는 정도에 불과한 일이었을 뿐이었고. 3.1 운동을 당시의 분위기나 흐름으로 연출하거나 하는 것도 아니고 왜 별안간 고종 장례를 재현하겠다는 것인지 이벤트를 해도 타당성있게 해야한는 것.
도대체 3.1운동과 고종 장례가 무슨 연관이 있다고 당시 백성들 사이에선 고종의 죽음에 대해 "그놈, 참 잘 죽었다."라고 할 만큼, 애도는커녕 비아냥어린 여론이 더 많았다던데...
퍼포먼스를 위한 퍼포먼스, 고증없이 문제는, 정부나 지자체나 알맹이가 결여된 저런 엉터리들을 뭐 대단한 기획자인 양 중용하고 있다는 점이지. 私기업도 아닌 공공의 기관에서 하는지에 대한 비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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